자동차 블랙박스는 비행기에서 왔을까? 같은 이름, 다른 기록

항공기 블랙박스와 자동차 블랙박스 기록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자동차 앞유리에 달린 작은 카메라를 우리는 ‘블랙박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비행기 사고 뉴스에도 같은 이름의 장치가 등장합니다.

도로를 촬영하는 자동차 카메라와 항공기의 비행 기록장치. 생김새도 다른 두 장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두 장치에는 사고가 나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항공기 블랙박스가 작아져 자동차 카메라로 바뀌었다고 설명하면 실제 역사와 차이가 생깁니다.

블랙박스의 이야기는 하늘에서 사고의 단서를 찾으려던 한 과학자로부터 살펴볼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워런은 무엇을 기록하려 했을까?

1950년대, 호주의 과학자 데이비드 워런은 코멧 여객기의 사고 원인을 논의하는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사고를 이해하려면 비행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했지만, 이를 알려줄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워런은 사고 직전 조종사들의 대화와 조종실 소리가 남아 있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실마리가 된 것은 전시회에서 본 소형 녹음기였습니다.
워런은 1954년 사고 조사에 활용할 녹음장치를 제안했고, 이후 시제품 개발로 이어갔습니다.

당시에도 비행 데이터를 기록하는 기술은 존재했습니다.
워런의 중요한 공헌은 조종실 음성과 비행 정보를 남겨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데 활용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출처: 호주 국립박물관


항공기 블랙박스에는 무엇이 담길까?

항공기 블랙박스라고 부르는 기록장치는 크게 두 기능으로 나뉩니다.

구분기록하는 내용
비행자료기록장치(FDR)고도와 속도 등 항공기의 비행 상태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조종사들의 대화와 조종실의 소리

비행 데이터는 항공기가 어떤 상태였는지 보여줍니다.
음성 기록은 그때 조종사들이 무엇을 인지하고 어떻게 대응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두 기록을 함께 분석하면 사고 전후의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두 기능을 하나로 묶은 장치도 있습니다. 출처: 에어버스의 비행 기록장치 설명


블랙박스인데 왜 오렌지색일까?

항공기 블랙박스는 이름과 달리 밝은 오렌지색으로 눈에 띄게 만들어집니다.
사고 현장에서 쉽게 찾아 회수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록장치는 사고 이후에도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혹한 환경을 견디도록 기록부를 보호하는 구조가 중요합니다. 출처: 에어버스

그렇다면 왜 ‘블랙박스’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에어버스는 초기 비행 기록장치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상자 안에서 사진 필름에 데이터를 기록했던 역사를 소개합니다.
오늘날 장치의 외장 색깔을 그대로 부르는 이름은 아닌 셈입니다. 출처: 에어버스의 블랙박스 역사

오렌지색 항공기 블랙박스와 비행 데이터·조종실 음성 기록 기능을 표현한 그림
항공기 기록장치는 사고 현장에서 발견하기 쉽도록 눈에 띄는 색상을 사용합니다. 장치 형상은 개념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자동차 블랙박스는 도로를 영상으로 기록한다

한국에서 흔히 자동차 블랙박스라고 부르는 장치는 대시캠(Dash Cam)입니다.
카메라로 차량 주변을 촬영하고 영상을 저장합니다.

예를 들어 앞차가 언제 멈췄는지, 다른 차량이 어느 방향에서 들어왔는지처럼 도로 위의 상황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제품에 따라 녹음이나 충격 감지 저장 기능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저장 공간이 차면 오래된 일반 영상을 덮어쓰는 순환 녹화 방식도 사용됩니다. 출처: 가민 대시캠 사용설명서

항공기 기록장치와 자동차 대시캠은 사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다만 항공기 기록장치를 소형화한 것이 곧 자동차 대시캠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동차 대시캠은 렌즈로 주변 장면을 담는 영상 기록장치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자동차에는 영상을 찍지 않는 기록장치도 있다

자동차 기록장치를 이야기할 때는 EDR(Event Data Recorder·사고기록장치)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EDR을 충돌 전후의 짧은 시간 동안 차량과 탑승자 관련 기술 정보를 기록하는 장치로 설명합니다.
이 정의에는 음성이나 영상을 기록하는 장치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기록 항목은 차량과 시스템에 따라 다르지만, 차량의 움직임이나 운전자 조작, 안전장치의 작동 상태 등이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출처: NHTSA

세 장치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장치주로 남기는 기록
항공기 블랙박스비행 데이터와 조종실 음성
자동차 대시캠차량 주변 영상, 제품에 따라 음성 등
자동차 EDR충돌 전후의 차량 상태와 작동 데이터
항공기 블랙박스, 자동차 대시캠, 자동차 EDR이 기록하는 정보 비교
항공기 기록장치, 영상 중심의 대시캠, 차량 데이터를 기록하는 EDR의 차이.

같은 사고를 살펴보더라도 대시캠은 주변에서 벌어진 장면, EDR은 차량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하늘과 도로를 잇는 것은 ‘기록’의 가치

항공기 블랙박스와 자동차 대시캠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남깁니다.
한쪽은 비행 상태와 조종실의 소리를, 다른 한쪽은 도로 위의 장면을 기록합니다.
두 장치를 연결하는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기억과 추측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에, 다시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남긴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앞유리의 작은 카메라는 모든 상황을 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촬영된 범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가 블랙박스를 도로 위의 목격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관련 영상: 블랙박스 이야기를 CARLAB STORY 쇼츠로 보기